배틀그라운드 구급상자 아이콘이 바뀐 이유는 국제법 위반?
대학생 대외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한 글 입니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라면 한 번 쯤은 생각해봤던 주제.
"게임 심의"
기존에 게임물 등급에 관한 사안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있었고, 2006년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공포됨에 따라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발족해 2013년 부산광역시로 청사를 이전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정말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에 심의를 걸어 공분을 사던 심의도 이제는 제법 공감을 얻는 수준이 된 것 같아요. 물론 게임과 게이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와중에 지금 핫한 국산게임 배틀그라운드.
최근 국제법 위반으로 수정된 내용이 있는데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국제법 위반 하셨습니다."
(인디게임 프리즌 아키텍트)
1) 인게임 속 5px 사이즈 이미지가 국제법 위반이라니.
프리즌 아키텍트(Prison Architect)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2012년에 출시된 교도소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인데요. 플레이어가 교도소를 건설하고 교도관과 일꾼, 교도소 소장등을 고용해 국가로부터 인도받은 죄수의 시간표를 정하는 등 교도소를 꾸려나가는 게임 입니다. 죄수들이 폭동이나 탈옥을 저지르지 않게 잘 운영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게임이 국제법 위반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실제 게임 속 구급차)
"적십자 표장 무단사용은 국제법 위반 입니다"
게임 내에 등장하는 구급차가 조그만한 빨간 적십자 마크를 달고 있는데요, 영국 적십자사로부터 "게임 내 사용되는 적십자 마크는 제네바 협약 위반이기 때문에 수정을 요청한다"는 요지의 메시지를 받은 것. 개발진은 처음엔 "누군가의 장난성 스팸메일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검토 결과 실제 영국 적십자사에서 보낸 메일로 확인 됐습니다. "적십자 마크는 국가로 인정받은 민간 단체에만 사용이 인정되고 무단사용 시 법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결과 개발사 측에서 빨간색에서 녹색으로 마크를 교체하는 업데이트를 실시하게 됩니다. 벌금을 내거나 변호사를 고용해 대응을 하는 것 보다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죠.
2) 체력회복 아이템 "+"가 아닌 "H"로
(게임 "헤일로"에서도 헬스팩 이미지를 변경 했다)
프리즌 아키텍트 뿐 만이 아닙니다.
게임 헤일로(halo)는 전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FPS 게임 인데요, 한 때 헤일로 안에서도 게임 캐릭터의 회복을 도와주는 "헬스팩"이 흰색 바탕에 빨간색 마크(=적십자 표장)을 사용 했습니다. 역시 "헤일로" 또한 국제법 준수를 위해 대문자 H가 표기 된 마크로 이미지를 교체 했습니다.
(알약으로 이미지를 변경했다)
FPS계의 클래식 "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둠"의 개발사는 출시된 모든 둠 시리즈의 헬스팩 이미지를 적십자 마크에서 알약으로 변경 했습니다.
3) 배틀그라운드 너 마저
(최근 핫한 국산 FPS게임 배틀그라운드)
가장 최근 수정된 게임은 MMORPG 테라의 개발사로 유명한 블루홀의 신작. 배틀그라운드.
(그걸 알아차리는 것도 대단해)
아직 이슈화 되진 않았지만 최근 배틀그라운드를 즐기는 동생들 덕에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갑자기 수정된 구급상자)
배틀그라운드 공식홈페이지에 등록된 2017년 5월 23일 패치 노트를 살펴보면
"구급상자(First Aid Kit)의 아이콘을 수정했다."
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d corss에서 대문자 H로)
기존의 구급상자 아이콘에는 흰 배경에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적십자 표장이 사용 됐는데. 역시 국제법 준수를 위해 이미지를 교체하게 됐습니다.
2. 유저들의 반응 :: "너무한 거 아냐?"
▲ 너무한 게 아니냐
계속되는 적십자의 조치에 국내외를 불문하고 "너무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게임산업의 다양한 규제는 항상 논란이 됐기 때문에 반발은 더욱 거셀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부 게임언론사에서 적십자가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거나, 게임의 폭력성이나 잔혹성을 이유로 검열을 요구했다는 식으로 논란과 반발을 더욱 키웠는데요, "이러한 논란에도 적십자 측에서는 묵묵부답이다."는 기사"까지 있어 유저들의 반발은 더욱 커졌습니다.
저 역시 한 명의 게이머로서 너무한게 아닌가 싶어 찾아봤습니다.
왜 게임 속 적십자 마크는 국제법-제네바 협약- 위반일까요. 게임 개발사는 각 국 적십자사의 강경한 태도 때문에 게임 속 아이콘을 수정했을까요? 그리고 정말로 적십자 측에서는 폭력성을 지닌 게임을 규제하려고 했는지. 실제로 공식적 입장 없이 묵묵부답이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 적십자 표장, 함부로 쓰면 안되는 이유
▲ 말 뿐만이 아니라 법으로도 금지!
실제로 적십자 표장(Red Cross Emblem)은 법률로 보호 받고 있습니다. 위 법률은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중 일부인데요 해당 항목은 제네바 협약으로 대한민국에서 체결/공포된 국제법이기 때문에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고 있으며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고소로 돈 벌려는 거 아냐?)
벌금이나 법적 소송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꾀하려는 게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각 국 적십자사가 소송이나 벌금을 통해 이득을 얻진 않았습니다.
(처벌 사례 '0건' / 데일리메디 기사 中)
(메일의 내용도 정중했다고 한다)
▲ 실제로 고소 하거나 강압적 태도를 취하진 않았습니다
상표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악의가 없는 이상 실제로 벌금형을 선고 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같은 경우 수 년 째"적십자 표장 바로잡기 운동을 통해 시민들의 제보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 처벌한 사례는 없습니다.
(적십자 표장을 찾아보세요 / 게임 프리즌 아키텍트 중)
그렇다고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요.
"프리즌 아키텍트"의 개발자는 비록 포토샵에서 몇 초 밖에 걸리지 않는 일이었다고 말했지만(he change took seconds to make in Photoshop) 동시에 수 많은 오남용 사례가 있음에도 "불과 5픽셀 사이즈 밖에 되지 않는"작은 기호를 수정하라는 권고에 상당히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습니다. 게다가 해당 개발자는 영국 적십자사를 후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적십자 표장은 전쟁 속 구호요원의 생명을 보호한다)
그렇다면 적십자는 "왜?"자신들의 표장(Red Cross Emblem)에 그리 민감할까요?
그것은 바로 적십자 표장이 단순한 상표나 저작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전쟁터에서 구호 활동을 하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활동을 구분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 입니다.
* ICRC는 국제적·비국제적 무력충돌, 내란 혹은 긴장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혹은 제네바협약을 근간으로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국제 인도주의 기구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라 할 정도로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전쟁. 서로가 죽고 죽이는 참담한 현장에서 피해자들에게 인도적 구호활동을 펼치는 것이 적십자 운동 입니다. 전쟁터에서도 "적십자 표장"을 지닌 사람은 절대 공격하지 않도록 전 세계가 약속한 것이 "제네바 협약"입니다.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국제적 비난과 고립을 면치 못합니다. 설사 비준국이 아니더라도 관습적으로 지켜오고 있는 룰인 셈이죠.
"전쟁에 룰이 어딨느냐"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서로의 신념이나 이해관계로 전쟁이 일어나도 언젠 간 끝나는 법. 그때까지 전 세계로부터 미움을 넘어선 적대를 받고 싶은 국가는 없겠지요.
(우리나라 또한 큰 도움을 받았다 / 대한의사학회, 한국전쟁과 부산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의 의료구호활동, 2010)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은 한국전쟁. 이 때도 ICRC에서 한국전쟁 피해자들을 도와줄 것을 호소했고, 35개 연맹국가에서 각자 물자와 인력을 지원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으로 ICRC에게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국가 중 하나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교적 가까운 시간에 전쟁이라는 아픔을 겪고, 전쟁은 지금도 멀리 있지 않으니까요.
(출처 : ICRC blog)
▲ 지금도 어디에서는 전쟁. 그리고 ICRC에 의한 구호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공식 홈페이지(http://kr.icrc.org/activities/main)에 방문하면 그들의 구호활동에 대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 구호활동 보호를 위해 표장도 엄격히 보호받고 있습니다.
무력 충돌 시 다치거나 죽어가는 이들을 위로하고 구원해줄 수 있는 군의무기관 과 군종교요원들 만이 보호표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부의 명확한 승인과 통제하에 적십자 표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외로는 적십자사로 부터 사용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사용 할 수 있습니다.
(적십자병원만이 표장을 이용 할 수 있다)
(국제표준화기구가 정한 구급처치 심볼은 초록색 십자 / 한국표준정보망(KSSN))
"빨간 십자마크가 병원의 상징 아닌가?"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적십자 병원 만이 적십자 표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병원들은 국제표준화기구 ISO가 제정한 구급처치 심볼인 "초록색 십자"로고를 이용하거나 독자적 로고를 이용 합니다.
(비디오 게임에 대한 적십자의 입장은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3. 적십자는 게임을 규제하지 않습니다.
<국제적십자리뷰(International Review of Red Cross) vol. 94 no. 886>에서 적십자가 비디오게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국제인도법의 보급과 비디오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인도법(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IHL)이라는 게 있는데요, 전쟁법 혹은 무력충돌법이라 불립니다. 전시상황에서도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내용 입니다. 국제인도법의 여러 개 조항 중 가장 알려진 것이 지금까지 이야기한 "제네바 협약"이 되겠습니다.
(구급차를 공격하는 건 좀...)
▲ ICRC는 비디오 게임의 폭력수준에 대한 논쟁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The depictions of violence in video games, per se, are therefore not the issue.)
다만, ICRC는 일부 게임에서 등장하는 고문이나 현실 세계에서 전쟁 범죄로 여겨지는 심각한 행동이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질 수 있음을 우려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불법적 행동을 "해도 괜찮은" 행동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 (A video game enables players to commit acts of
torture and other grave breaches or serious violations of IHL in a virtual armed
conflict.)
보통은 전쟁에서 어떤 행위가 금지되어 있는지 잘 알지 못하니까요(Players are not informed that such acts are prohibited.)
(Somebody help me!, 인질을 쏘면 체력이 줄어든다. 버추얼캅2)
▲ 그렇다고 게임을 재미없게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ICRC는 게임 중 윤리 교육 팝업창이나 설교로 유저들이 기분 망치길 바라는 게 아닙니다.(The aim is not to spoil players’ enjoyment by, for example, interrupting game play with pop-up text listing legal provisions or lecturing gamers on the rules of war)
과학적으로 비디오게임 안의 폭력적 행동과 현실세계의 폭력적 행동의 연관 지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With respect to video games and individual behaviour, there is no conclusive
scientific basis for linking IHL violations that occur in real life with those depicted
in video games.)
다만 유저들이 비디오게임을 하며 전쟁에서 금지된 행위에 대해 무감각해질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우려 할 뿐이지요.
(Nonetheless, it is contended that the widespread use of video games
has the potential to desensitize players to the very existence of rules on the use
of force.)
그렇기 때문에 국제인도법이 게임에 잘 녹아 들어가 게이머들이 현실성 있는 경험을 하며 실제 전쟁에서 겪는 딜레마를 간접 체험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Instead, the aim is to see rules governing the use of force integrated into
video games so players can have a truly realistic experience and deal first hand with
the principles of distinction)
고전 명작 중 하나인 "버추얼캅2"에서 인질을 공격하면 내 라이프가 하나 줄어들 듯이 말이죠. 무법게임이라 불리는 GTA만 해도 나쁜 짓(?)을 저지르면 범죄 단계를 뜻하는 별이 늘어나고, 경찰로 시작해 군대(심지어 탱크가 -_-;;)가 주인공을 쫓아오지 않습니까.
실제로 ICRC는 게임에 인도적 규정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게임 업계와 대화 할 의지가 있음을 표명했고 또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Together with concerned Red Cross and Red Crescent National Societies it has initiated a dialogue
with game producers, designers, and players on the production of more realistic
games that integrate the law and therefore present players with the same dilemmas
as those faced by soldiers on contemporary battlefields)
(적십자, 적신월, 적수정 모두 같은 의미)
▲ 적십자 요원들을 위해 이미지를 변경해주세요.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게임 내 적십자 표장을 제거하거나 다른 이미지로 대체 했습니다.
(In some video games the Red Cross and Red Crescent protective emblems are
replaced with alternatives)
(만약 누구나 적십자 표장을 사용할 수 있다면?)
▲ 오남용은 적십자 표장의 실질적 기능을 저하 시킵니다.
전쟁터에서 ICRC는 민간인과 부상자를 도우며 치료하고 구호 합니다. 그리고 적십자 표장은 전쟁터에서 구호요원를 구분해주고 목숨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누구나 붉은 십자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번거롭지 않고 편하겠지요. 하지만 실제 전쟁에서 적십자 표장이 가지는 상징성과 구분성은 많이 줄어들 겁니다.
(구호활동 중 사망한 ICRC 구호요원들)
ICRC 구호요원들은 전쟁과 재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활동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전쟁과 재난이 두렵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 아닌 누군가의 죽음도 똑같이 안타깝고 두려운 일이기에
지금도 전쟁터와 재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i am #NotATarget
▲ 생명을 지켜주세요, 적십자 구호요원을 지켜주세요.
번거로울 수 있지만
적십자 표장을 보호하는 일이 그 첫걸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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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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